마음이 다잡아 지지 않는 토요일 오전. 토스의 창업 이야기를 담은 <유난한 도전>을 읽다가 이승건 대표님이 스티브 잡스 연설문을 이야기하는 부분에 꽂혀서 오랜만에 스티브 잡스 스탠퍼드 졸업 연설문 전문을 찾아보았다. 나는 너무도 평범하고, 이런 정신을 차리게 하는 말은 항상 금세 잊고 살지만, 흐려진 마음을 다시 잡고 일어서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영상은 하단 링크 참조 👇
Steve Jobs' 2005 Stanford Commencement Address
스티브 잡스의 졸업 연설, 스탠퍼드 2005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먼저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Truth be to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사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태어나서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 인생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딱 세 가지 이야기입니다.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첫 번째 이야기는 점을 연결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전 리드 대학에 입학한 지 6개월 만에 자퇴했습니다. 정말 관두기 전까지 18개월 정도는 그 주변을 어슬렁거렸죠.
So why did I drop out?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왜 자퇴했을까요? 이야기는 제가 태어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저의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 보내기로 결심했던 거죠.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그녀는 저의 미래를 위해, 대학을 나온 양부모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죠.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하지만 제가 막상 태어났을 때, 그들은 여자아이를 입양하기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대기자 명단에 있던 저의 현재 부모님은 한밤중에 이런 전화를 받게 됩니다.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입양하시겠습니까?"
They said: “Of course.”
부모님께서는 "물론이죠!"라고 대답하셨죠.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나중에 어머니가 대학 졸업자가 아니고, 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것을 알게 되자 생모는 입양 동의서에 서명을 거부했습니다.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go to college. This was the start in my life.
몇 달 후에 부모님이 저를 대학까지 가르치겠다고 약속한 다음에야 생모는 입양에 동의했습니다. 이것이 제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17년 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순진하게도, 스탠퍼드만큼이나 비싼 대학을 선택했습니다.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노동자 계층이었던 부모님이 애써 모아 둔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6개월 후, 대학생활은 그만한 가치가 없어 보였습니다. 내가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또 대학이 그것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게다가 양부모님이 평생 모으신 재산을 쏟아붓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이 잘 될 거라고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당시에는 두려웠지만, 돌이켜보면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였습니다.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자퇴 후에는 관심 없던 필수과목들을 그만두고 더 흥미 있어 보이는 강의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서 자기도 했고 5센트짜리 콜라병을 팔아 끼니를 때우기도 했습니다.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매주 일요일 밤이면, 모처럼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을 걸어 하리 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그 음식이 마음에 들었죠.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순전히 호기심과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훗날 정말 값진 경험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리드 대학은 당시 미국 최고의 캘리그래피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 곳곳에 있는 포스터와 서랍에 붙어있는 라벨은 손으로 아름답게 그린 칼리그래피로 장식되어있었죠.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자퇴해서 더 이상 정규과목을 들어야 필요가 없어서 저는 캘리그래피를 배워보자고 결심했죠.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s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산세리프, 세리프 등의 서체, 글자들 조합 사이의 간격을 조정하는 것, 그리고 훌륭한 타이포그래피의 조건 등에 대해 배웠습니다.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아름답고, 역사적이고, 예술적이고도 미묘한, 그래서 과학으로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타이포그래피의 세계에 빠져버렸죠.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이런 것들은 사실 제 인생에 어떤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는 희망조차 없었습니다.
But 10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그러나 10년 후, 첫 번째 매킨토시를 디자인하던 때 이때 배운 것들이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었습니다.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그 모든 것을 맥에 적용할 수 있었죠. 아름다운 타이포그래피를 담은 세계 최초의 컴퓨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제가 만약 그 타이포그래피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맥은 여러 타이포그래피나 자동 자간 맞춤 등의 기능이 포함되지 않았을 거예요.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윈도는 그냥 맥을 복붙 한 거니까, 결국 어떤 개인용 컴퓨터도 이런 기능이 없었을 뻔했다고 보면 되겠군요.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만약 대학을 중퇴하지 않았다면, 캘리그래피 수업을 못 들었을 거고, 개인용 컴퓨터는 지금처럼 아름다운 서체를 갖지 못했을 겁니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 10 years later.
물론 대학시절 앞을 내다보면서 점을 연결할 생각은 못했죠. 10년 전을 되돌아보니 비로소 분명하게 보이는 것 같네요.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
다시 한번 강조해봅니다. 앞을 내다보면서 점을 연결할 수는 없어요. 뒤를 되돌아봤을 때만 연결할 수 있습니다.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이런 점들이 미래에는 연결될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무언가 믿어야 합니다. 직감, 운명, 인생, 카르마 등.
Because believing that the dots will connect down the road will give you the confidence to follow your heart.
왜냐하면 이 점들이 결국엔 연결될 것이라고 생각해야 나의 가슴이 시키는 일을 자신감 있게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ven when it leads you off the well worn path. And that will make all the difference.
운명이 우리를 험한 길로 이끌더라도 말입니다. 이 작은 차이 하나가 모든 것을 바꿔놓을 것입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I was lucky —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스티브 워즈니악과 저는 20살 때 저희 부모님 댁 차고에서 애플을 만들었습니다.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열심히 일한 덕분에 10년 만에 4,000명이 넘는 직원을 고용한 20억 달러짜리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제가 30세가 되기 1년 전, 우리의 최고의 작품 맥킨토시를 출시했고,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어떻게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해고당할 수 있을까요?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애플이 성장하면서, 회사를 함께 경영할 훌륭한 파트너를 고용했고, 처음 몇 년 동안은 잘 굴러갔습니다.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시간이 지날수록 미래에 대한 비전이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틀어지게 되었습니다.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결국 모든 것이 틀어졌을 때, 이사회는 파트너의 편에 섰습니다. 그리고 저는 30년에 퇴출되었죠. 매우 공개적인 망신이었습니다.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제 인생은 한순간에 중심을 잃어버렸고, 절망적이었죠.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몇 달 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이전 세대의 기업가들을 실망시키고, 제가 넘겨받은 바통을 놓쳐버린 것 같았습니다.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데이비드 패커드 (H.P 공동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창업자)를 만나 모든 것을 망쳐버린 것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대중적인 실패의 대명사였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 I still loved what I did.
하지만 제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 일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애플에서 겪었던 일이 그런 저의 생각을 하나도 바꾸지 못했죠. 저는 거부당했지만, 여전히 사랑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성공의 중압감은 초심자의 산뜻한 마음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모든 일을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되었죠.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제 인생 최고의 창의적인 시기였습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5년 간, NeXT와 Pixar를 창업했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Pixar는 세계 최초 3D 장편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를 만들었고,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r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놀랍게도 애플이 NeXT를 인수하였고, 저는 다시 애플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NeXT에서 개발한 기술이 애플 르네상스의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아내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가꾸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제가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었겠죠.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씁쓸한 약이었지만, 저에게 필요한 것이었나 봅니다. 때로는 인생이 벽돌로 머리를 강하게 내리치더라도,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저를 계속 움직이는 힘이 있다면,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사랑이라고 확신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일이나 사랑 모두 적용할 수 있는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여러분 삶의 대부분은 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인생의 진정한 만족을 얻기 위해서는 내가 하는 일이 위대하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훌륭한 일을 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아야 합니다. 쉽게 타협하지 마세요.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찾게 된다면, 마음이 먼저 알아챌 것입니다.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모든 위대한 관계들이 그렇듯,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잘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찾을 때까지 멈추지 마세요. 현실에 안주하지 마세요.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세 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17살 때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매일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산다면, 언젠가는 맞을 것이다."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이 문구에 감명을 받았던 저는, 지난 33년간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오늘이 너의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과연 지금 하려는 일을 할 것인가?"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대답이 "아니요"인 날들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무언가를 바꿔야 한다는 의미로 생각했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인생의 큰 결정을 내릴 때마다 유용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Because almost everything —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모든 기대, 자존심, 수치심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죽음 앞에서 의미가 없어지고, 정말 중요한 것들만 남길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죽음에 대한 생각은 내가 잃을 것이 있다는 착각에서 효과적으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당신은 이미 발가벗은 몸입니다. 당신의 가슴이 시키는 일을 안 할 이유가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1년 전, 저는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고, 췌장에서 악성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저는 췌장이 뭔지도 몰랐죠.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의사는 치료 가능성이 희박한 암이고, 앞으로 3~6개월 정도 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그는 집에 가서 주변을 정리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의사의 은어였죠.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아이들에게 앞으로 10년은 더 함께할 시간이 있었다고 믿었기 때문에 미뤄뒀던 이야기들을 2달 안에 전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모든 것들이 정리되어 가족들이 나를 편하게 보내줄 수 있도록 정리하라는 의미였습니다.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눠야 했죠.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암 선고를 받고 하루가 지났습니다.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오후 늦게 조직 검사를 했고, 의사가 목구멍에 내시경을 욱여넣고, 위와 장을 지나 췌장에 바늘을 넣어 암세포 일부를 떼어냈습니다.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저는 마취 상태여서 몰랐는데, 나중에 아내가 전해주더군요.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하던 의사가 흐느끼기 시작했답니다. 왜냐하면 치료 가능한 희귀한 종류의 췌장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죠.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다 나았습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제가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갔었던 일이었고, 앞으로도 수년간은 그런 일이 없길 바라고 있습니다.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개념으로만 알고 있던 죽음이라는 유용한 도구에 대해 좀 더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이 세상에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도 죽는 과정은 스킵하고 싶을 정도죠.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종착지입니다. 누구도 피해간 적이 없죠.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그렇게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삶의 변화를 만드는 중개자이고, 오래된 것을 쓸어버리고, 새로운 것에 길을 터줍니다.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지금 이 순간 새로운 것은 여러분일 테죠,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여러분 역시 나이를 먹어서 쓸려나가겠죠.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너무 극단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엄연한 사실입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느라 낭비하지 마세요.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세상의 규율에 빠지지 마세요. 그저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생각의 결과물 속에 살고 싶지 않다면요.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다른 사람이 만들어낸 의견의 홍수에 당신 마음속 소리가 잠식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용기를 가지고 당신의 마음 속 소리, 그리고 직관을 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이미 당신의 마음은 당신이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그 외의 것들은 중요하지 않아요.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어렸을 때 'The Whole Earth Catalog'라는 멋진 책이 유행이었습니다. 저희 세대에게는 경전 같은 것이었죠.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여기서 멀지 않은 Menlo Park에서 스튜어드 브랜드라는 사람이 만들었어요. 그만의 시적인 감성이 살아있는 책이었습니다.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60년대 후반이었고, 개인용 컴퓨터나 출판 기술이 있기 전의 이야기입니다. 모든 것은 타자기, 가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만들어졌어요.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책으로 만든 구글 같은 것이라고 하면 이해하면 되겠네요. 구글이 설립되지 35년 전에 만들어졌습니다. 이상적이고, 훌륭한 생각의 도구가 흘러넘치던 책이었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The Whole Earth Catalog는 몇 권 발행되었고, 그들이 할 일을 다 했으며,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1970년 중반의 일이죠.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네요.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최종판 뒤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히치하이킹을 한다면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이죠.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그 아래, 이런 말이 적혀있었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그들의 마지막 작별 인사였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제 자신에게도 항상 그러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시작 앞에 선 졸업생 여러분께도 같은 기도를 드립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Thank you all very much.
Stay Hungry. Stay Foolish.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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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연설 원본이 궁금하다면?
Steve Jobs' 2005 Stanford Commencement Address
언제 봐도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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